중세 후기 유럽의 목욕 문화
중세까지는 목욕은 죄악시되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건강에도 나쁜 행위라는 의식이 팽배했습니다. 그러나 중세말이 되자 이러한 관념들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욕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중세 말이 되자 수도원의 도덕적 경각심들도 더이상 목욕의 위험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목욕과 한증탕은 모든 사회계층에서 일반적인 관행이 되었습니다. 성 도미니쿠스회의 펠릭스 파버는 신체를 청결히 할 것을 권장하고 더욱이 속옷을 정기적으로 갈아입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목욕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욕조에서 하거나 한증탕에서 수증기를 쬐는 방법이 그것입니다. 보통 혼자 하거나 여럿이 함께 했습니다. 집에서 할 때에는 침실에서 목욕물을 데울 수 있는 화로 옆에 욕조를 준비하는 것이 손님 접대의 가장 중요한 의무이기도 했습니다.
부유한 부르주아나 귀족들은 저택 내의 사적인 공간에서 옷을 벗고 목욕을 했습니다. 16세기 뉘른베르크의 안톤 투허의 집에서 집주인은 자기 침살 옆에 작은 방을 두었습니다. 거기에는 나무 격자로 덮인 바닥 위에 놋쇠 난로가 있었고 바로 옆에 나무 목욕통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당시는 여러 요법들이 있었는데. 갈레누스의 비법에 따르면 향기로운 풀잎을 물속에 넣어 우려내고 장미 꽃잎을 목욕하는 사람에게 뿌리면 좋은 효과가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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